정부가 농지 전수조사 과정에서 불거진 농촌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한 후속대책을 내놨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더불어민주당은 9월 21일 당정협의를 열어 명백한 농지 투기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하되, 상속·고령화와 농촌의 관행적인 임대차 등 현실에서 발생한 위반에 대해서는 일률적인 처분보다 '정상화'와 '양성화' 기회를 주기로 했다.
방향 자체는 농촌 현실을 일정 부분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농지 전수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몇 가지 위반 사례를 한시적으로 구제한다고 해결될 성격이 아니다. 고령화와 농촌인구 감소, 비공식 임대차 확대, 상속농지 증가, 농지은행의 제한된 수용 능력 등 농지제도와 실제 농업현장 사이의 구조적인 괴리가 누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대책이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땜질식 정책처방’ 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전수조사를 계기로 우리 농지제도 자체를 농업 · 농촌 현실에 맞게 다시 설계하는 작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 284만 필지 ‘위반 의심’…농촌 현실과 농지법의 괴리 드러나
정부는 올해 농지법 시행 이후인 1996년 1월 1일 이후 취득한 농지 약 136만㏊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7월 말까지 조사 대상의 97%인 132만㏊, 1,013만 필지에 대한 기본조사가 이뤄졌으며 이 가운데 27%인 약 284만 필지가 불법 임대차, 무단 휴경, 불법 전용, 소유제한 위반 등의 ‘의심 농지’로 분류됐다.
특히 불법 임대차 의심 농지가 21.1%로 가장 많았고 무단 휴경 11.6%, 불법 전용 9.0%, 소유제한 위반 1.4% 등이었다. 다만 이 수치는 위법이 확정된 농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정보와 항공사진 등을 토대로 심층조사 대상으로 분류한 수치다.
문제는 이처럼 많은 농지가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된 이유를 단순히 농지 소유자들의 ' 법 위반 의식 부족 '으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농촌에서는 오랜 기간 부모에게 물려받은 농지를 이웃 농민에게 맡겨 경작하게 하거나, 고령으로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농민이 별도의 서면계약 없이 농지를 빌려주는 일이 적지 않았다. 소규모 필지를 서로 바꿔 경작하거나 여러 소유자의 농지를 한 농민이 묶어서 경작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현행 농지제도가 원칙적으로 '경자유전 ' 을 중심에 두고 있는 반면 실제 농촌에서는 고령화와 영농규모 확대에 따라 임대차가 농업생산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전수조사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법과 현실의 간극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 당정, 상속·고령·관행적 임대차 처분보다 ‘정상화’
이번 후속대책은 이러한 현실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
정부는 실제 영농 의사 없이 시세차익이나 개발이익을 노리고 농지를 취득한 경우에는 엄정하게 조치하기로 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허위 영농계획을 제출해 농지를 취득한 후 휴경하거나 불법 임대한 경우, 농업법인으로 농지를 취득해 부동산업을 하는 경우, 경매를 통해 농지 지분만 취득한 뒤 방치하거나 불법 임대한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농업진흥지역을 야적장이나 야영장 등으로 불법 전용한 중대한 위반도 엄정하게 처리한다.
반면 상속이나 고령화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워진 농지와 농촌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진 임대차는 자진 정비와 농지은행 위탁 등을 거쳐 정상화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농지은행에 위탁한 관행적 임대차 농지는 기존 실경작자가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임대차 특별정비기간은 11월 15일까지 연장됐고, 불법 전용 농지 가운데 일정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는 농지보전부담금 등을 납부한 뒤 사후 추인하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당정은 이를 위해 농지이용 정상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제정과 농지법 개정을 추진하고 농지은행의 매입·연금사업 확대를 위한 예산 증액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 후속대책 나왔지만 현장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정부의 방향 전환에도 농촌 현장의 불안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투기 목적의 위반’과 ‘농촌의 관행적 위반’을 어디에서 구분할 것인지다. 농촌의 농지 소유·이용 형태는 매우 복잡하다. 상속 시점, 실제 경작기간, 거주지, 임대차 경위, 농업경영체 등록 여부 등 다양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세부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같은 상황에서도 지자체와 조사 담당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전국적으로 통일된 판단기준과 충분한 소명절차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또 하나는 농지은행에 지나치게 많은 역할을 맡기고 있다는 점이다. 위반 상태에 있는 농지를 농지은행에 위탁하면 제도적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농지은행이 실제로 모든 농지를 받아 관리하고 임차인을 연결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농촌에는 작은 필지와 맹지, 경사지, 접근성이 좋지 않은 농지, 생산성이 낮아 임차 희망자를 구하기 힘든 농지가 적지 않다. 이런 농지까지 대규모로 위탁 신청이 몰릴 경우 농지은행의 인력과 예산, 관리능력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 임차농·친환경농가는 ‘농지 하나 바꿔주면’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이번 전수조사에서 주목해야 할 대상은 실제 농사를 짓는 임차농이다. 전수조사가 시작되면서 일부 부재지주가 조사를 우려해 기존 임대차 관계를 종료하려 한다는 문제가 제기됐고, 정부도 이를 인정해 임대차 특별정비기간을 운영하고 농지은행 위탁 등을 유도해왔다.
농민단체에서도 관행적 임대차를 정상화하는 방향 자체는 평가하면서도 실제 경작자의 우선임차권과 장기임차 보장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9월 21일 후속대책과 관련해 현재 실경작자가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고 고령농의 농지를 안정적으로 넘길 수 있는 출구대책과 공공매입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임차농의 문제는 더욱 세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는 지난 22일 '농지 투기 근절 대책 명확화와 실질적 농민 중심의 농지제도 개혁을 촉구한다! ' 란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 친환경 임차농은 경작농지 상실 시 대체농지 확보가 어려워 친환경 인증과 실경작 이력이 확인되는 농지에 한시적 처분 유예 및 농지임대차 허용 예외를 확대하는 과도기적 보호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친환경농업은 아무 농지나 대신 제공한다고 영농을 계속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오랜 기간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줄이고 토양의 유기물과 생태계를 관리해야 하며 주변 농지의 농약 비산 여부와 수질 등도 인증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기존 농지에서 장기간 친환경농업을 실천해온 임차농이 계약해지로 농지를 잃는다면 단순한 ‘경작지 이동’ 이상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친환경 인증농가와 청년농, 시설투자를 한 임차농에 대해서는 기존 실경작지를 중심으로 장기임차를 보장하고 합법적인 임대차로 전환시키는 별도의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 농지가격·담보가치 불안도 면밀히 살펴야
농촌 현장에서는 전수조사 이후 농지 거래가 위축되고 농지가격과 담보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농지 경매의 유찰이 반복되고 지역 농·축협이 담보농지 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사례가 보도됐다. 최근 농지 경매 낙찰률 저하와 담보가치 하락 가능성이 농·축협의 여신건전성과 농가 대출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현장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이러한 현상이 전국적으로 어느 정도 규모인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통계 확인이 필요하다. 정부 역시 농지 거래와 가격 문제에 대해 일부 보도와 다른 설명을 내놓고 있다. 따라서 막연한 ‘농지가격 폭락론’이나 반대로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지역별 농지 실거래가격, 거래량, 경매 낙찰률, 농·축협 담보평가액 등을 지속적으로 공개해 전수조사가 실제 농촌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 양성화와 처분유예로 끝내면 같은 문제 다시 반복
이번 정부 대책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현장의 불만이 커질 때마다 처분을 유예하거나 불법 상태를 한시적으로 양성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봉합하는 것이다. 농촌 현실과 맞지 않는 제도를 그대로 두고 일정 기간마다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합법화한다면 몇 년 뒤 동일한 문제가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
38년 만에 추진되는 불법 전용 농지의 사후 양성화 역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법을 지켜 정식으로 전용허가를 받고 농지보전부담금을 납부했던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동시에 이번 조치가 앞으로 불법 전용을 해도 결국 양성화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로 작용하지 않도록 명백한 고의·투기 목적 위반과 생계형·관행적 위반의 기준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 이제 필요한 것은 ‘농지 처분대책’이 아니라 ‘농지제도 개혁’
정부가 이번 전수조사를 진정한 농정 대전환의 출발점으로 만들려면 몇 가지 구조적인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
우선 농지법상 임대차 제도를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불법 임대차가 전체 조사농지의 상당 부분에서 의심될 정도라면, 모든 문제를 단속과 처벌만으로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투기를 막기 위한 소유규제는 유지하되 실제 농사를 짓는 임차농의 권리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농지 소유자와 실경작자를 투명하게 등록하고 일정 요건을 갖춘 임대차는 양성화하는 대신 계약기간, 임차료, 갱신절차 등을 관리하는 ‘공공관리형 농지 임대차제도’를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고령농을 위한 현실적인 농지 출구전략이다. 농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농지를 사줄 사람이 없고 농지은행 매입도 쉽지 않다면 처분의무만 강화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농지은행의 공공매입 기능과 농지연금, 장기임대 프로그램을 확대해 고령농이 안정적으로 은퇴하고 농지를 청년농과 전업농에게 넘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는 실경작자 중심으로 정책의 기준을 전환하는 것이다. 농지정책의 최종 목적은 서류상의 소유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량농지를 보전하고 실제 농업생산이 지속되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뿐 아니라 누가 실제로 농사를 짓고 있는지, 해당 농지가 식량생산과 환경보전에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를 함께 보는 농지관리체계가 필요하다.
네 번째는 친환경농업과 청년농 등 정책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 실경작자에게 안정적인 장기임차권을 제공해야 한다. 농지은행 역시 단순한 임대 중개기관을 넘어 농지를 장기적으로 확보해 청년농·친환경농가·전업농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공공 농지관리기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농지 전수조사의 목적 자체를 다시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번 조사의 목적이 농지법 위반자를 대량 적발하고 농지를 처분시키는 데 있다면 농촌의 불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전국 농지의 실제 소유·이용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잘못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만드는 데 목적을 둔다면 이번 조사는 향후 농지정책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농식품부도 이번 전수조사를 단순한 처분을 위한 조사가 아니라 농지 실태를 파악하고 제도와 정책을 농촌 현실에 맞게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농민이 농지를 두려워하게 해서는 안 된다
농지 투기를 막고 우량농지를 지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국가적 과제다. 동시에 우리 농촌은 이미 초고령화와 농가인구 감소, 후계농 부족이라는 전혀 다른 현실에 직면해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지를 이용해야 한다’는 경자유전의 취지를 지키면서도 실제 농촌에서 농지가 원활하게 이동하고 임대되고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정부가 현장의 반발이 커질 때마다 처분유예와 한시적 양성화 대책을 내놓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농지문제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임시방편이 아니라 농촌 현실에 맞는 농지제도의 근본적인 재설계다.**
이번 전수조사는 농민에게 농지를 빼앗는 조사가 아니라 농지가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안정적으로 연결되도록 제도를 고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투기 목적의 농지 소유는 엄격하게 차단하되, 고령농에게는 안정적인 은퇴의 길을, 임차농에게는 안정적인 경작권을, 청년농에게는 농지를 확보할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농지정책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그래야 농지 전수조사가 농촌의 혼란을 키운 정책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미뤄왔던 농지제도 개혁을 시작한 전환점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9월 22일 (화)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문당환경 정보화마을에서 농지 전수조사와 관련한 농업인들의 애로사항과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자리에서 " 농지의 현실은 책상에서 모두 알 수 없다”며 “ 현장에서 농업인들의 어려움과 농지 이용의 현실을 직접 확인한 만큼, 특별조치법 제정과 농지법 개정 등 필요한 제도 개선을 확실하게 추진하고, 농지제도를 현실에 맞게 개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송장관이 밝힌 대로 농지의 소유·이용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현실에 맞는 농지 관리와 제도 개선에 활용하기를 기대해 본다.
(농업환경뉴스)



















